사도신경 강해(12)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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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서론
사도신경의 마지막 고백들을 끝으로 사도신경 강해를 마치게 됩니다.
우리가 크게 사도신경을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고백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오늘 고백들은 지난주와 지지난주 사도신경의 내용과 함께 “성령”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령님의 존재와 성령님의 사역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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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거죠?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이 고백이 성령님의 사역인지 확신하십니까?
성부는 구속 사역의 계획
성자는 구속 사역의 성취
성령은 구속 사역의 적용
성령님이 구속 사역을 적용하신 그 사역이 먼저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교제하게 하신 것이죠.
초대교회가 생기기 바로 직전에 누가 임했습니까? 성령님이 임하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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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오늘의 고백도 성령의 구속사역의 적용인 것입니다.
오늘의 고백은 성령님이 성도 개개인에게 구속사역을 적용할 때 생기는 일입니다.
먼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이며,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
이 두 가지의 사역이 성령님이 성도에게 구속사역을 적용하실 때 생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일들은 성령님이 하신 사역에 대한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본론
1.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먼저 우리가 고백하는 성령님의 첫번째 사역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사역은 십자가에서 종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다고 말했잖아요.
그런데 성도 개개인에게 이 대속 사역이 적용이 되어야합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대학교를 합격하면요, 그 합격으로 인하여 입학 조건은 성취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여러분이 대학교 수업을 들을 수 없죠.
여러분이 등록을 하고, 학비를 납부해야 비로소 입학하고 수업을 듣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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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처럼 예수님이 우리의 죄에 대하여 이미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그 죄에 대한 속죄의 조건을 다 성취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역이 한 학생이 학비를 내고, 등록을 하듯이 적용이 되어야 하는 거에요.
다만 차이점은 등록은 사람이 하지만 그것을 성령님이 하시는거죠.
죄를 사하여 주시는 사역의 적용조차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하는 거에요.
성도 개인에게 오는 죄에 대한 용서와 구원의 과정에서 모든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가 한 것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도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그 죄에 대한 희생과 댓가를 십자가에서 치루셔서 구속 사역을 성취하신 분이 예수님이고, 그 성취된 사역을 적용시키시는 분이 성령님이에요.
성령님은 이 죄를 사하여 주시는 적용 사역을 우리에게 행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이 사역을 적용시키실 때 일어나는 인간 개인의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죄를 죽을 죄로 인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거의 여러분의 죄를 분명히 용서받지 못할 큰 죄로 인식하고 계십니까?
아마 여러분들이 기독교인이라고 본인을 생각할지라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내가 그렇게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인가?’라는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현대의 심리학은 모든 인간들의 내적인 문제들의 원인을 나 자신이 아닌 가정, 환경, 사회로 돌립니다.
현대 심리학의 전제는 무엇인가요? 인간이 처음 태어날 때의 마음은 깨끗한 상태라고 믿는 것이죠.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과 완전히 배치됩니다.
현대 심리학이 근, 현대 철학의 영향 아래서 인간의 죄성이 배제된 체로 발전되었습니다.
현대 심리학의 입장의 일부가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장 중요한 원인 하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처음부터 죄로 인해 타락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가정과 환경 사회가 무너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인간이 시작부터 죄로 인해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 죄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이 궁극적인 선을 행할 능력을 잃고, 선해보이는 일을 할지라도 진리이신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할 수 없다는 무능한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가운데 만약 ‘나는 그렇게 죽을만한 죄를 짓지 않았는데? 나는 심판을 받을만한 죄를 짓지 않았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어떠한 행위로 죄를 짓기도 이전에 존재하는 죄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행위도 궁극적인 선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요, 우리가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에게 복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전해주신 복음은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선을 행할 수 없는 비참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아들을 죽게 하시고, 그 죽음으로 인해 완성된 완전한 선함을 우리의 것으로 여겨주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일정 부분이 부패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복음은 완전한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 복음은 일부의 복음이에요. 복음의 파편일 뿐인 겁니다. 그리고 그 파편의 복음을 복음으로 이해하면 복음에 대한 왜곡이 일어나게 됩니다.
완전한 복음은 우리가 한 것이 없이 예수님이 다 이루어주신 죄 사함의 사역을 그저 받는 것입니다.
적용)
그 하나님의 은혜를 여러분 믿으십니까?
나는 영영 죽을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기 위해 죄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시고, 그 죽음의 값을 우리의 것으로 여겨주십니다.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먼저 이 죄를 인식해야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 복음의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감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면 감사를 쥐어짜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감사가 흘러 넘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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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한번은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너무 부담스러워요. 왜 나를 대신해서 죽은거죠? 그런 사랑은 저는 좀 부담스러워요.’
이 질문을 들었는데 제가 완전히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라 약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질문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보게 됐어요.
예수님의 그 사랑을 부담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뭘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질문을 가지는 분의 마음 가운데 결국 자신의 죄에 대한 깊이와 그 결과를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죄는 무엇입니까? 온통 부패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깨끗해질 수 없고, 선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사람 앞에서 과연 부담스러운 마음을 먼저 앞에 둘까요 자신을 살려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앞에 둘까요?
만약 그 순간조차 부담스러운 마음을 앞에 두는 분들은 어쩌면 그 마음이 자존심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죄에 대한 깊이와 결과를 깨달았다면, 그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을 구해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나를 살려주세요, 당신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요.’
‘나를 사랑해주세요, 당신의 사랑만이 나를 살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깊은 죄를 깨달은 후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고 계십니까?
2.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두번째로 오늘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구속 사역은 부활과 영생입니다.
여러분 이 부활과 영생의 기본 조건은 무엇이냐면, 성도들에게 이루어지는 죄를 사함 받는 은혜입니다.
이 죄를 사함 받음이 없으면 부활과 영생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죠.
그리고 부활과 영생의 근원은 어디서부터 오냐면, 죄를 용서받은 자들이 예수님을 닮아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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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부활과 영생의 근원은 예수님이고, 그것으로부터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는 원리에 있습니다.
왜 부활과 영생의 근원이 예수님인가요?
그 두 가지 모두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셔서 육체로 오셨지만, 부활하셔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이제 믿음으로 인하여 거듭나고 부활과 영생을 누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이라는 것은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던 예수님의 부활의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여러분 한번 복습해봅시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의 고백을 다뤘을 때 우리는 ‘낙원’과 ‘하나님 나라=천국’의 개념을 구분했었습니다.
낙원은 아직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 성도들이 죽으면 경험하게 되는 중간 상태라고 했었죠. 하나님을 대면하는 상태라고요.
그리고 재림 전 낙원에 있을 때까지 성도는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체로 하나님과 함께 거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어떻게 되나요?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임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는 존재합니다. 하나님나라 백성들이 하나ㅣㄴㅁ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죠.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죄의 권세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는 언젠가 온전히 이 땅에 임하게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재림 때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재림의 모습은 부활하신 모습 그대로 오신다고 했었습니다.
육체와 영혼이 함께 부활한 그 모습으로요.
그리고 그때 온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됩니다.
낙원에 있던 육체의 사망을 경험한 자들도 이 땅에서 육체와 영이 함께 연합한 상태로 부활하고,
살아있는 성도들도 온전한 육체와 영혼을 입고 부활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의 부활한 그 모습에 대해서 네 가지 특성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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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활한 몸은 썩지 아니할 몸이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2) 부활한 몸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3) 부활한 몸은 강한 몸이다.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 부활한 몸은 “신령한 몸”이다.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죄의 결과로 인한 육체의 연약함이 없는 온전하고 완전한 몸으로 성도들은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렇게 부활이 무엇인지 알고 영생을 대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한 가지 오해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영생은 죽음 이후부터인가요?
혹은 영생은 예수님이 재림하신 이후부터인가요?
아닙니다. 영생은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부터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며 영생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영생을 살아가고 계십니다. 그 복을 지금 누리고 계십니다.
이제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이 땅에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영광의 부활체를 입고 우리는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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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떤 분들은 영원히 살기 싫다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너무 지루하거나, 혹은 그 자체가 고통일 것 같다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지극히 지금 놓인 현실에만 시선을 두는 태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할 영원한 삶은요, 이 땅에서의 죄로 인한 우리의 모든 결핍, 불안, 부족이 없는 삶입니다.
우리가 지루하다거나 고통이 있을 것 같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그 이 땅에서의 삶의 부족한 부분들은 여러분이 가진 결핍 때문인데, 그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원한 삶이 싫다고 생각될만한 모든 이유를 한번 가져와보십쇼.
그 모든 이유는 다시 생각해서 인간의 죄로 인한 결핍과 타락이 없다고 본다면 그것들이 영원한 삶을 싫게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영생은 영원한 평안과 안식, 영광을 누리는 삶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주 완벽하게 회복되고, 이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도 지극히 완벽하게 회복되어서 지금의 나의 부족함과 남은 죄로 인한 불편함이 아닌, 무한한 사랑과 영광과 의로움을 가득히 누리며 살아가게 될 삶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하다는 것은요, 허무함이 아닙니다. 영원하다는 것은 그 안에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기쁨과 평안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그 어떤 감정과 경험으로도 이것을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느꼈던 가장 큰 행복보다도 더 큰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적용)
그래서 저는 여기서 한번 더 강조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영생이 무엇인지 깨달으셨다면, 여러분의 큰 죄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 죄들이 여러분이 영생을 못 누리게 하는 결정적인 걸림돌인 것이고요, 그것이 해결되어야만 여러분은 그 부활체와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개숙여 이 땅을 바라보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영생을 바라보고, 부활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똑같이 살아가며 똑같은 하늘을 바라볼지라도 믿음이 없는 자들은 어두운 미래를 바라보게 되지만, 성도들은 영생을 바라보게 됩니다.
결론